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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군포편

by Hyun._.b 2021. 4. 23.

경기도 군포는 수리산 너른 품에 안긴 싱그러운 도시로
시 단위 면적은 전국에서 세 번째로 작지만,
28만여 명이  살아가는 포근한 동네입니다.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240년 된 고택을 지키는 노부부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지는, 뿌리 깊은 맛을 지키는 60년 노포

 

  
아파트촌에서도 서로 기대어 정을 나누고 사는 이웃들의 동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백 열아홉 번째 여정은 
구도심과 신도시, 전통마을 등 다양한 얼굴을 
가진 경기도 군포로 떠나봅니다. 

 

 

경기도 군포의 지명은 조선 후기부터 있었던 ‘군포장’ 시장에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집니다. 

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군포장역으로 운행을 시작한 지금의 군포역은 군포 역사의 출발점이라 볼 수 있습니다. 

 

배우 김영철은 오래된 연립주택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군포의 구도심을 지나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옛 골목을 화폭에 담는 거리의 화가들을 발견합니다.

 

30년이 넘게 군포에서 활동해온 화가들은 시대의 광풍에 사라지고 변해가는 ‘나의 도시’를 이들만의 방식으로 기록하고자 화실을 벗어나 거리로 나왔다고 합니다.

빛바랜 2층 양옥집, 흉물이라 천대받는 전봇대 전선도 이들의 눈에는 귀중한 소재!

화가의 손길이 닿으면 낡은 것들은 곧 향수를 자극하는 명작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시간이 흐르고 도시의 모습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지만,

그 시절 아련한 추억들이 남아있는 군포의 오래된 동네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림 속에 남아 있습니다.  

 

 

놋쇠를 두들기는 소리에 이끌려 한 유기 공방으로 들어간 배우 김영철.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쇠를 늘리기 위해 박자에 맞춰 망치로 두들기는 닥침 질이 한창입니다.

이곳은 경기도 무형문화재 방짜 유기장 김문익 선생의 공방으로 지금은 전수 조교이자 조카인 이춘복 씨가 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공방에서 만든 방짜 징은 그 울림이 맑고 청아해 국내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인정받는다고 합니다.

60년 세월 넘게 방짜 징을 만들어온 이모부 김문익 선생은 조카의 눈썰미를 알아보고 일을 배워볼 것을 제안했고

덕분에 조카 이춘복 씨 역시, 방짜 유기장으로 40년 한 길을 걸었다고 합니다. 

 

평생 같은 길을 걸어온 이모부와 조카.

그들의 손에서 탄생한 징 소리의 여운이 유난히 짙고 깁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도심형 철쭉군락이 바로 경기도 군포에 있습니다! 

봄이 한창 무르익는 4월 말이면 산본 신도시에 조성된 철쭉동산에는 

22만 본의 철쭉이 만개해 진분홍빛 물결이 장관을 이룹니다.

 

군포시민들에게는 일상에서 누리는 도심 속의 자연을 선물하고,

외부인에게는 군포를 찾는 특별한 이유가 되고 있다는데.

작년부터 이어진 코로나19 여파로 출입은 통제가 되었지만,

멀리서나마 만개한 철쭉의 향연을 즐겨봅니다. 

 

봄 햇살 아래 꽃길을 걷던 배우 김영철은 들려오는 밴드 연주 소리를 따라 가봅니다. 

파워풀한 록 음악, 강렬한 패션이 예사롭지 않은 이들은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벌써 10년 차로 공연 경력도 꽤 되는, 군포에서는 나름 유명 밴드라고 합니다. 

지금은 누구보다 흥이 많은 엄마들은 아픈 아이를 키우며 잘못하지 않아도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고,

손에서 휴대폰을 놓지 못하며 아이의 그림자처럼 살아왔다는데.

일주일에 두 번, 딱 2시간. 삶의 탈주로 이자 기쁨인 밴드 활동이 엄마들의 인생에 변곡점이 되었다고 합니다.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나아가 아이, 가족들과의 관계까지 큰 파동을 가져왔기 때문.

음악으로 인생의 새봄을 맞은 엄마들, 그들이 연주는 과연 어떤 울림을 줄까요?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내 농지가 펼쳐지고, 

도시농부들이 한해 농사 준비에 한창입니다.

배우 김영철은 아버지와 함께 대파를 심고 있는 진아 씨를 만납니다.

 

밭 인근에서 남편과 동네 빵집을 운영하는데, 직접 키운 대파로 만든 대파 빵이 대표 메뉴입니다.

절친한 친구에서 부부의 연을 맺기까지 이들을 이어준 사랑의 큐피드는 다름 아닌 빵!

아내는 남편의 권유로 제빵을 시작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아 울며 좌절하는 날이 많았고, 그 모습이 안쓰러웠던 남편은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함께 빵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빵에 있어서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티격태격하는 동갑내기 부부.

더 맛있는 빵을 만들기 위한 부부의 열정은 오늘도 빵빵~하게 부풀고 있습니다.

 

그린벨트에 속해 그간 개발의 손길이 더뎠던 속달동. 

시대의 흐름에 따라 속절없이 옛 모습을 잃어가는 중에도 세월의 더께가 앉은 종택은 공고히 서 있습니다. 

 

조선 중기의 문신 정난종 선생이 공을 세워 임금에게 받은 사패 지인 

이 마을에는 대대로 후손들이 살았으며 현재 남아있는 종택의 안채는 정조 7년(1783)에 지어졌습니다.

현재 종가를 지키고 있는 분들은 동래부원군 17대손 부부. 

남편은 태어나 줄곧 이 집에서 살고 있다는데.

240년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고택은 눈길 닿는 어디라도 가족들의 기억이 서려 있어

부부는 올봄에도 창호지를 바르고 마당을 정돈하며 집을 가꿉니다.

지난 2011년, 조상 대대로 살아온 집과 토지를 모두 국가에 기증했다는 남편.

가진 걸 움켜쥐기만 하는 세상에서 오직 선조가 남긴 집을 보존하고자 모든 것을 내놓은 부부.

군포 사람이라면 으레 안다는 오래된 설렁탕집으로 향한 배우 김영철. 

91세, 1대 어머니와 가업을 이은 딸들을 만납니다.

어머니는 60년 전, 설렁탕집을 열고 샛별 보며 식당에 나와 캄캄한 밤하늘 보며 귀가해

평생 3시간 넘게 주무신 적이 없다고 합니다. 

더구나 고된 일을 하면서도 늘 상아색 한복을 정갈하게 입고 버선에,

고무신까지 신으셨다는데. 어머니의 발엔 그 고단한 시간이 훈장처럼 남아 있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도우며 자연스레 뒤를 잇게 된 딸들은

어머니의 국물 맛이 변하진 않을까 늘 노심초사 입니다.

가게는 딸들에게 어머니 그 자체이기 때문.

 

어머니가 하던 방법, 마음가짐까지도 변치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합니다.

60년이란 시간을 푹 우려낸 설렁탕 한 그릇에는 대를 이어 변치 않는 모녀의 올곧은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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